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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의 道敎에 대한 이해와 백제문화의 道敎的 요소

Publisher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Publication Date

Abstract

1년차의 연구주제는 “백제인의 사유체계와 道家·道敎”이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먼저 중국에서 도교가 어떻게 성립, 발전되어 나갔고, 도교의 핵심사상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조명해보도록 하겠다. 1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백제의 도교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백제 귀족의 전범이었던 위진남북조 사대부들의 정신생활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대부의 유·불·도 삼교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검토하되 도교 이해에 초점을 둘 것이다. 3장에서는 근구수왕대 막고해의 간언이나 사택지적비의 내용, 고구려와 신라의 예를 참고하여 백제 귀족의 사유체계를 살펴보고 백제 도교의 특성을 추출해볼 계획이다. 그 동안의 연구에서 백제에는 도가사상은 받아들였으되 조교로서의 도교는 성립하지 않았다고 보았는데, 백제에 도사나 교단조직이 없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도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조건과 기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도교는 이미 4세기 무렵 백제 귀족의 사유체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도덕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아마도 한성함락 이후에는 육조 사대부들의 은일사상, 산수에 대한 열정을 체화시켜 자연에 더욱 심취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유교적 소양을 기본 바탕에 깔고, 불교·도교와 결합 내지 소통하면서 자신들의 사유체계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년차의 연구주제는 “백제 문화에 보이는 道敎的 요소”이다. 현재까지의 연구에서는 백제의 개별 유물·유적에 보이는 도교와 관련된 요소를 찾는 데 그쳤으나, 본 연구에서는 그것을 각 시기별로 나누어 백제의 도교문화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비교 검토해보고자 한다. 먼저 한성시기는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운모편과 매실, 몽촌토성의 苑池 유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운모가 대량으로 출토되고 매실이 발견된 것은 한성시기 백제인들이 이미 운모와 매실의 효능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웅진시기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방격규구신수문경과 지석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왕이 묘지를 지신으로부터 매입한 것은 東漢의 유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조에 영향을 미친 도교사상이 당시 백제에까지 영향 미친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중국 도교와의 관련 속에서 무령왕릉의 출토유물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보기로 하겠다. 사비시기는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이 많은 까닭일 수도 있지만, 도교적인 색채를 찾을 수 있는 유물·유적이 가장 많은데 금동대향로, 각종 문양전, 목간 자료를 통해 도교적 요소를 찾아보기로 하겠다. 3년차의 연구주제는 “사비시기 백제문화의 융·복합적 성격”이다. 1, 2년차의 연구를 바탕으로 사비시기 백제문화의 성격에 대해 규정해보기로 하겠다. 백제문화의 융·복합적 성격은 주민구성이나 계통에서도 찾아질 수 있고 종교적 측면에서도 찾아질 수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주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유·불·도 삼교의 융·복합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히 사비시대는 성왕, 위덕왕, 무왕대의 문헌 기록이나 유물·유적에서 이러한 흔적이 많이 찾아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백제에서 도교가 유교나 불교와 나란히 통치이념으로서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백제인의 사유체계 형성에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유교와 불교만이 아니라 도교, 백제인이 꿈꾸던 이상세계를 응축시켜 낸 결정체가 바로 금동대향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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