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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황실교육 연구

Publisher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Publication Date

Abstract

주지하는 것처럼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엽은 세계 각국의 문호가 널리 개방되어 열강의 각축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 조선왕조도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점차 빈번하게 되는데, 그로 인한 각 방면의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1876년 일본과의 강화조약으로 개항이 본격화되자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이 급격히 노출되기 시작했다. 1890년대에 와서는 동학혁명(1894)·갑오경장(1894) 등으로 통치질서가 혼란에 빠졌으며, 더우기 청·일전쟁(1894∼1895) 이후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事大文化圈이 붕괴되고, ‘힘’에 의한 약육강식의 公理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사회는 교육사적으로는 구학문·구교육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사회적으로는 봉건 모순을 개혁하여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민중운동이 강화되어 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고종은 1897년(고종 34) 10월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격상시켜 왕을 황제로, 연호를 光武라고 하였으며, 교육이 곧 구국의 길임을 설파하면서 적극적인 신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그 모범으로써 왕실의 신교육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한제국기의 교육운동에 관한 연구는 개화세력과 선교사들에 의한 신교육 운동 및 근대학교 설립에 집중되었다. 당시 근대교육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개화지식인들과 선교사들의 근대학교의 설립 등은 근대교육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왕에 의해 다스려진 왕조국가였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의 주요 교육정책에 있어서 왕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갑오경장 이후 단행된 왕실교육기관의 축소 및 대한제국기 성립 이후 실행된 황실교육의 실상을 살펴보고, 신교육의 수용 및 근대 교육기관의 설립 과정에 있어서 발휘된 고종의 신교육 정책과 황실의 역할에 대해서 규명해보고자 한다. 연구의 내용구성은 황실교육기관의 변화양상과 고종의 신교육 정책 및 황실의 신교육운동을 두 축으로 하였다. 연구방법은 성장과정에 따라 설치되는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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