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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적 타자의 매혹: 로런스의 『께짤코아틀』에 그려진 인종과 성

Publisher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Publication Date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크게 네 가지 문제를 다룬다. 인종적 타자가 지니는 매혹의 원인, 그 매혹이 『께짤코아틀』과 『날개 돋친 뱀』에서 나타나는 양상의 차이, 인종적 매혹과 성의 관계, 그 매혹을 다루는 서술 전략이 그것이다. 케이트가 멕시코인에 대해 두려움과 혐오감을 품고서도 그 육체에 매혹되고 간혹 동일시에 가까운 친밀감마저 느끼는 심리는 인종적 타자성에 선행하는 ‘보편적 인간성’의 발견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케이트는 자신이 익히 알던 서구적 ‘인간됨’의 개념과는 아주 다른 무엇에 이끌린다. 그런데 이 무엇은 ‘그들’에(만) 속한 것일까? 지젝은 인종주의를 이해할 때 가시적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the Other)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케이트가 인종주의자건 아니건, 그가 ‘본’ 것은 실은 보이지 않는 무엇이자 자기의 주체형성과정에 관련된 무엇이 아닐까? 이 질문을 역사적인 것으로 바꾸면, 케이트는 서구 근대문명 한 가운데에서 번성해온 감상적 원시주의를 재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로런스가 ‘원시성’을 근대문명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그 ‘이후’의 탐색을 위한 원천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또 케이트의 심리에 근대성의 보충물로서의 원시성에 대한 동경과 탈근대적 존재에 대한 희구가 공존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께짤코아틀』과 그 수정본의 차이 가운데 케이트의 행위에 관한 것, 즉 께짤코아틀 운동에의 적극적 참여 여부나 씨프리아노와의 성적, 제도적 관계 형성 여부, 또 멕시코에 계속 머무느냐 마느냐의 문제 등은 불충분하게나마 평자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본 연구에서는 그 외에도 씨프리아노의 혈통, 사회주의자 오웬의 서술자로서의 비중 등 그간 별로 논의되지 않은 차이들을 함께 다루고자 한다. 인종과 성의 연관 문제는 편의상 이성간 관계와 동성간 관계의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케이트와 라몬 및 씨프리아노의 관계는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오랜 갈등과 그 ‘봉합’의 역사를 반추하게 만든다. 동성간 관계 중 여성의 경우, 남편을 여의고 자녀 양육을 영국에 거주하는 어머니에게 일임한 케이트는 후아나의 자기 자식에 대한 태도와 테레사의 남편에 대한 자세에 동경, 비난, 경멸감, 열등감이 뒤섞인 복잡한 반응을 보인다. 계급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케이트가 탈식민지 남성들과 형성하는 유대를 왜 탈식민지 여성들과는 형성하지 못하는지는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인종적 타자이면서 동성인 탈식민지 여성에 대한 케이트의 태도와, 인종적 타자이자 성적으로도 타자인 그곳 남성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하는가? 여기서 케이트에 대한 작가의 거리 두기는 어떤 성 관념 및 성차 관념을 함축하는가? 남성의 동성 관계에서는 같은 인종인 라몬과 씨프리아노 사이의 친밀감이 부각된다. 이들의 육체적 접촉은 비서구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성 유대에 속하는가, 아니면 ‘제 3세계 동성애’의 완화된 형식인가? 혹은 그것의 기원을 전적으로 작가에게 돌리는 것은 가능한가? 작가는 서구 남성과 비서구 남성의 친밀감은 이야기에서 철저히 배제한 채 타 인종 남성의 매력을 서구 여성으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는 ‘안전한’ 구도를 택하는 한편, 타 인종 남성들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성 감정을 억압된 형태로 표현한 건 아닐까? 혹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이중적 이상, 곧 바람직한 지도자상과 좋은 성적 파트너 상을 동시에 발견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작가가 어떤 서술자들을 어떤 비중으로 동원하는지, 서술자들의 언어가 하나의 효과로 통합되는지 아니면 별개의 세계를 구성하면서 ‘대화적’ 관계에 들어가는지, 그 통합 또는 관계 방식들이 인종적 타자의 타자성을 드러내거나 은폐하는 데에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등을 묻는다. 여기서 『께짤코아틀』의 서술 방식은 그 수정본과 더불어 『무지개』의 경우와 비교될 것이다. 이는 『무지개』가 전일적 목소리의 지배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예로서, 『께짤코아틀』의 서술적 특징이 그것과의 비교를 통해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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