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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구조개혁의 정치경제학:사례분석을 통한 현실적 대안의 모색

Authors
Publication Date
Keywords
  • Ur 라운드
  • Wto 협상
  • 시장 개방

Abstract

1960년 초반이후 수출주도 공업화 성장전략을 추구한 한국경제는 197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수출증대에 성공하여 1960년대 초반의 농업형 경제구조를 완전히 공업형 경제구조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한다. 1960년 GDP중 농업의 비중이 39.9%, 공업의 비중이 18.6%였던 것이 1980년에는 GDP중 농업의 비중이 14.6%, 공업의 비중이 41.4%로 바뀌게 되었다. 1980년대에 와서 주력수출상품이 과거의 섬유, 신발 경공업제품에서 등 철강, 자동차, 반도체, 가전제품 등으로 개편된 한국은 미국시장에서 미국의 동종산업과 직접 경쟁에 직면하면서 한국은 본격적인 ‘통상마찰’을 겪게 된다. 더구나 1980년대 중반부터 低유가, 低국제금리, 低달러 (3低)라는 국제여건의 호조에 따라 한국은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면서 무역수지 흑자를 실현하게 된다. 한국의 주력수출상품의 개편과 선진국 시장에서 국내기업과의 정면 경쟁,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의 실현 등은 서방세계에 한국이 드디어 “제2의 일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우려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 내에서는 이 기회에 선진국의 경제club인 OECD에 가입하여 한국경제의 대외적인 위상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러한 변화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초부터 추진해온 수출지향, 공업화 위주의 경제성장전략은 197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한국정부의 무리한 중화학공업 육성전략, 국제유가 상승, 그리고 국내정치불안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다. 1980년에 출범한 제5공화국은 경제정책의 우선목표를 무리한 성장보다는 안정에 두고 이를 위해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일련의 정책을 고안, 집행해 갔다. 과거 수출보조금, 관세보호장벽, 수입제한 조치 등으로 수입은 통제하고 수출은 맹목적으로 진흥하던 정책에서 점진적인 수입관세인하, 수입제한품목의 완화를 개방예시정책을 통해 추진해 갔다. 이런 와중에서 1986년에 출범한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협상은 한국경제에 기회와 도전을 제공했다. 1960년대 초부터의 20여년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또 세계 10권에 육박하는 수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경제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비교우위의 경제논리에 충실한 방향으로 경제구조조정, 독과점적인 국내산업의 경쟁촉진 및 생산성향상이 필요했고, 특히 농업분야와 서비스 산업의 효율성 제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책과제였다.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외적인 강력한 시장개방압력의 존재는 더 이상 구조조정을 늦출 수 없다는 인식을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측에게 일깨우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출범은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 한편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측은 맹목적인 애국심 호소 등 더욱 비경제적인 논리로 개방압력을 저지하게 될 우려가 있었다. 잘못하면 구조조정이라는 국가적인 개혁목표가 개방과 반개방으로 편가르기식 소모적 논쟁에 휩싸여 개혁이 지연되고 좌초될 위험성 또한 있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UR 농업협상은 실패한 협상이었다. 수출지향, 공업화 위주의 경제성장으로 산업의 비교우위가 제조업으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비교우위에 따른 구조조정이 요청하는 수준과 강도에 맞는 농업분야 구조조정 노력은 하지 않고, 농산물 개방불가라는 경직된 협상목표를 설정했다.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정부의 문제파악, 조정능력 또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공식적으로 표명한 정부의 입장은 “쌀 개방 불가” 였지만, 과연 모든 관계 부처가 진정으로 원했던 목표였는지 아니면 개방지연을 위한 전술의 일환이었는지는 의문이다. UR 협상의 실패에는 조정 권한의 부족에도 기인했다. 경제기획원은 시장 원리에 충실한 개방주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조정 권한이 부족했다. 소비자 보다는 생산자의 이해를 앞세우는 관계 부처의 입장이 강경할수록 의견 조정은 어려웠고, 조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행해져야 할 과반수 의결은 유명무실했고 관계부처가 거부권을 가졌다. UR 협상의 실패 뒤에는 정치제도도 한 몫을 하였다. 과도기적 정치 체제의 불안정성, 분열적 정당구조, 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찾아오는 선거는 경제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인 쟁점으로 비화시켰다. UR 농산물 협상결과 한국정부는 농산물 분야에서 개도국 대우를 받아 쌀 관세화를 2004년 이후로 유예했다는 점은 차선의 결과로 홍보했다. 그러나 그 결과 쌀 관세화 논쟁을 재연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곧 치러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UR 농산물 협상으로부터 다자간 통상협상에 대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첫째, 협상 의제들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조정 권한과 재원을 조정부서에 부여해야 한다. 둘째, 정부가 경직된 협상 목표를 공식적으로 설정해서는 안되며, 다수의 타협안을 가지고 유연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셋째, 경제적 협상 쟁점이 필요 이상으로 정치화되는 것을 차단하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언론의 선도적 역할이 강조된다. 넷째, 모든 이해 당사자들을 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합의 과정의 정당성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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