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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구학 자료로서의 호적대장 이용을 위한 기초 연구 - <<대구부장적>>과 호구관련 고문서의 비교 검토-

Publication Date
Keywords
  • 역사인구학
  • 호적대장
  • 대구부장적
  • 호구
  • 출생율

Abstract

역사인구학은 방대한 개인정보를 통계학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인구학은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자료가 존재하는 지역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서구의 <敎區登錄簿>나 일본의 <宗門改帳> 등이 서구와 일본에서의 역사인구학을 가능하게 하였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호적대장>과 <족보>가 있어서 역사인구학의 성립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인구학은 방대한 개인의 정보를 하나하나 데이터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연구자에게는 엄청난 시간과 끈기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본 연구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호적대장의 자료를 데이터화 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호적대장이 당시에 실재하고 있던 모든 호구를 등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호적대장의 호구통계 그 자체는 인구의 총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이러한 측면에서 호적대장이 어떠한 원리에서 작성되며, 실재의 호구를 얼마만큼 등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즉, 호적 작성의 원리와 등재율을 규명해 내고자 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나아가서는 이를 통해 인구 총수의 추산 가능성을 전망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고문서자료에 등장하는 1809명의 인명에 대하여 총 19개 식년의 호적대장과 비교 검토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적대장상에서 각 성관의 존속기간을 살펴보았다. 총 109개의 성관 가운데 존속기간이 3식년 이하인 경우는 70개 성관으로 64%를 차지하였다. 반면에 10식년 이상 존속하고 있는 경우는 18개 성관 17%에 불과하였다. 둘째, 36건의 고문서 자료에 등장하는 1809명의 호적등재율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시대에 따라 호적 등재율이 급격히 하락하였다. 17-18세기는 대체로 70-80%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19세기 전반에는 69%대, 중반, 후반에는 20%대에 불과하였다. 물론 자료의 성격과 호적자료와의 시간적인 근접성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가 가지는 문제 곧 호적대장의 역사인구학적 자료로서의 의미는 더 분석되고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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