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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ergence of the Examination System(Keju) and Its Transformation: Related with the Appearance of the New Literati(Shi)

Publisher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Publication Date

Abstract

저술의 입론 취지와 논증의 전개 과정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서 가목차에 따라 그 내용을 설명한다. 단 이 篇․章의 제목은 잠정적인 것으로서 더욱 다듬어질 것이다. 緖論 : 당대 과거제도의 연구사와 본인의 문제의식을 분명히 밝힌다. I. 과거제도의 출현 : 과거제도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을 주로 군주와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분석한다. I - 1. 隋․唐初 制擧의 성행 隋 煬帝가 進士科를 처음 시행하여 隋代에 이미 진사과 급제자가 있었다는 기존 연구들의 논거를 수대 당시의 기록에 의하여 비판한다. 물론 재건된 統一帝國은 관료의 선발을 중앙집권화하려 하였으나, 그 방법은 후대의 制擧와 유사한 형태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唐初에도 계속된다. 과거제도라고 부를 만한 常擧의 출현은 긴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I - 2. 中央官學의 정비 황제의 명의로 시행된 制擧는 관료의 안정적 충원이 어려웠다. 太宗이 國子監을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고 그 학생들을 우대한 조처는 이러한 점에서 주목된다. 국자감의 학생들을 매년 정기적인 시험을 거쳐 관료로 임용한 것은 常擧의 형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관학을 기반으로 한 관료의 선발은 국자감의 입학 자격 제한과 경학 중심의 교육 내용으로 인하여 사회적 영향력 확산에 한계가 있었다. I - 3. 常擧의 제도적 확립 高宗 顯慶 연간에 制擧와 구분되는 常擧의 존재가 확실해지고, 이때부터 과거제도는 분명히 중요한 관료 선발제도이었다. 그리고 후대에 상거의 전형으로 여겨진 개별 과목들의 특징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때 특히 주의할 것이 명경과와 진사과의 위상 차이이다. 명경과와 달리, 진사과 합격자는 기능 시험 과목인 명법과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대의 진사과는 상대적으로 하급 관료를 선발하기 위한 과목이었다고 여겨진다. II. 과거제도의 변용 : 과거제도가 확립된 뒤 과거에 실제로 응시하고 합격한 인물들의 動向을 중심으로 그 實態를 분석한다. II - 1. 鄕貢의 증가 玄宗 開元 연간 이전에는 중앙관학 출신의 生徒가 지방에서 시험을 거쳐 올라온 鄕貢에 비하여 중시되었다. 그런데 당시 묘지명 등을 통해 확인되는 과거 급제자들에서 향공의 증가 추세가 武則天 시기부터 뚜렷해진다. 이것은 과거제도의 전국적인 영향력 확대를 뜻한다. 그런데 향공으로서 급제한 이들의 사례는 진사과의 경우가 더욱 많다. 지방 출신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의 진사과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진사과에 응시한 이들은 늘어나고, 여기에서 과거를 매개로 한 士의 광범위한 사회적 확산이 잘 드러난다. II - 2. 과거 급제자의 성격 주요 관료들 중에서 과거 특히 진사과 합격자의 비율은 계속 높아진다. 武則天 시기 이후 더욱 두드러진 이러한 현상은 당시의 특이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와 함께 주목할 사실은 이때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한 관료의 적체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거 급제자 특히 진사과 급제자가 유능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터이나, 진사과에서 시험한 文筆力의 현실적 효용성과 남북조 시기 이래 문학적 소양을 士의 자격처럼 여기던 사회적 분위기가 특히 중요하다. II - 3. 禮部試로의 변화 과거 급제자들의 정치적 출세와 더불어 이 제도의 사회적 중요성도 커졌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것이 개원 25년부터 시작된 禮部試이다. 禮部에서 관리하게 된 과거는 그 이전과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하였다. 합격자들을 더욱 禮遇하게 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兵部에서 계속 관할한 武擧와는 달리, 禮部試 위주로 정착한 과거는 이제 단순한 관료 선발제도가 아니었다. 개원 말 이후 향공으로서 응시한 이들이나 진사과 급제자 관련 기록에서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자주 보인다. 結論 : 禮部試 중심으로 정착한 과거제도의 특징이 安史의 난 이후 더욱 뚜렷해진다는 사실과 이를 통해 등장한 士의 새로운 성격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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