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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Process of Reception and Settlement of Inner Rhythm in 1920's Korean Modern Poetry

Publisher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Publication Date

Abstract

이 연구는 오늘날 내재율 개념에 대한 혼란을 지적하면서 출발한다. 즉 오늘날 내재율의 개념은 적극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외형률, 혹은 정형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용은 그것이 내용 개념인지 형식 개념인지를 모호하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과연 규정될 수 있는 개념이기는 한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내재율 개념은 시의 율격 논의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도 애매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그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 기원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를 중심으로 내재율 개념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있다. 1920년을 전후 내재율 개념이 최초로 도입되는 과정을 살피는 곳에서는 주로 두 가지 점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될 것이다. 내재율 개념은 자유시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유시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자유시가 시인의 사상과 정서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던 당대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내재율의 개념은 애초 형식적인 개념이면서도 형식을 부정하는 개념, 즉 ‘반(反)율격’개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김억, 황석우, 양주동 등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자유시 율격으로서의 내재율을 주로 기존의 엄격한 형식, 즉 정형률에 반하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은 과거의 낡은 문화를 부정하고 신문화를 건설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매우 손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재율의 도입 과정에서 또 하나 살피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그것이 ‘반율격’의 개념이었을 뿐 아니라, 내용의 문제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황석우의 영율(靈律)·내용율(內容律) 등의 용어를 통해 살펴볼 수도 있고, 양주동의 율격논의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재율의 이와 같은 개념을 비교적 상세하게 해명하고자 한 인물이 바로 양주동이다. 그 또한 ‘자유시의 운율’이 “內容的 韻律(혹은 內容律, 內在律)”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 그것이 시인 개인의 사상과 정서의 문제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그는 과거의 ‘형식운율’과 대비시키면서 자유시의 “內容律은 곳 시인 그 사람의 呼吸이오, 生命”이라고 정리했던 것이다. 1925년을 전후한 시기 내재율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김소월의 「詩魂」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김소월은 「시혼」을 통해 국민문학파가 제시하는 엄격한 정형율을 비판하고 내재율의 개념을 근대시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즉 그는 ‘영혼(靈魂)’이라는 개념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구체적인 삶을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시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음영(陰影)’이라는 개념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1925년을 전후한 시기 국민문학파 시인들은 내재율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들이 민족적 시형으로서의 ‘조선시형’을 추구하는 과정이 자유시에 대한 비판 작업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 국민문학파 시인들이 구상한 민족적 시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율격의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자유시에 대한 비판은 실제로는 내재율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자유시가 형식적으로 ‘시적’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즉 그 내재율 때문에 시보다는 산문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즉 자유시는 형식적으로 뚜렷한 율격을 찾기가 어렵고 산문과 구별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비판의 근저에는 자유시가 민족적 시형으로서의 자질을 확보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민족적 시형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에 대한 비판은 자유시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는 내재율 개념을 형식적인 개념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문학파의 이와 같은 오해는 오늘날까지도 내재율 개념을 선명하게 하는 데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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