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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발전방향

Authors
Publisher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Publication Date

Abstract

본고는 첫째 5.16이후 약 3년간(1961.5.16~1963.12.16)에 걸쳐 軍事政府가 추진한 경제적 제반조치와 그 이념적 배경을 개관하고, 둘째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당시의 『思想界』를 중심으로 검토함으로서, 셋째 1960년대 초 대립적 정치세력간의 이념적 갈등 속에서 한국정치의 발전방향이 어떻게 모색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韓園軍事革命史』는 1961년 5월 16일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首都 서울을 비롯하여 全國 各 主要都市를 掌握한 華命軍은 軍事革命委員會를 組繼하고 午前 9時 現在로 全國에 非常戒嚴을 宣布하는 同時에 立法, 司法, 行政權等 一切의 張勉政權을 午前 7時를 期하여 引受한다고 宣言하였다. 이에 앞서 軍事革命委員會는 전국 라디오 방송망을 통하여 혁명공약 6개항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혁명공약" 6개항 가운데에 “「民主」라는 문투가 한 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혁명후 3일째인 5월 19일, 軍事革命委員會는 그 명칭을 “國家再建最高會議”로 개칭하고, 입법·사법·행정의 최고통치기관으로서 “最高會議”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7월 3일에는 朴正熙 將軍이 張都映 將軍을 대신하여 國家再建最高會議 議長職에 취임하였다. 그는 “就任辭”에서 “혁명”의 제 l단계 과업이 “爲先 달성”되었다고 밝히고, 2단계의 추진의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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