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fordable Access

고려 명종 18년 3월 임금이 제(制)를 내려 양계병마사와 5도안찰사에게 해당지역을 안찰할 것을 명하다

Authors
Publication Date
Keywords
  • 고려시대
  • 안찰사
  • 고려사절요

Abstract

3월에 제(制)하기를, “백성은 곧 국가의 근본이니, 짐이 그들을 고향에서 편안히 살고 그 생업을 즐겁게 여기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조신(朝臣)을 지방에 보내어서 나의 근심을 분담하고[分憂] 교화를 펼치게 하였다. 요사이 듣건대 수령이 급하지 않은 공사(公事)로써 백성을 침탈하고 괴롭히므로 그들이 폐단을 견디지 못하여 이리저리 떠나고 도망다니다가 도랑과 골짜기에 쓰러져 죽는다고 하니, 짐이 이를 매우 가엾게 여긴다. 양계(兩界) 병마사와 5도 안찰사로 하여금 민간의 이롭고 폐되는 점을 묻게 하여서, 유능한 수령을 승진하고 무능한 자를 폄출(貶黜)시키며, 원통하고 지체된 옥사(獄事)를 살펴 다스리고 농업을 권장하며, 군사를 무휼(撫恤)하고 세력 있는 자를 억누르며, 세공(歲貢) 외에 바치는 물품은 일체 폐지하게 하라." 하였다. 사신 권경중이 말하기를, “말하는 것이 같은 데도 그 말을 꼭 믿는 것은 말하기 전에 믿음이 있는 까닭이요, 영(令)이 같은데도 그 영이 꼭 행해지는 것은 영(令) 외에 성의(誠意)가 있기 때문이다. 명종이 일찍이 애통(哀痛)의 조서를 내렸고, 또 간측(懇惻)한 조서를 내렸는데도, 아전이 나쁜 짓을 고치지 않고 백성이 편안하게 되지 못한 것은, 영(令)이 좋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실행하는 성의가 따르지 못한 때문이었다." 하였다.

There are no comments yet on this publication. Be the first to share your thou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