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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자료] 어린 아이와 죽은 사람에게 베를 징수한 청주 목사 이낙배를 유배하고 영동 현감 김이석을 충군시키다

Authors
Publisher
실록청
Publication Date
Keywords
  • 청주목사
  • 이낙배
  • 유배

Abstract

청주 목사 이낙배(李樂培)를 숙천부(肅川府)에 유배시키고, 영동 현감 김이석(金履錫)을 영암군(靈巖郡)에 충군(充軍)시켰다. 앞서 호서 어사 윤로동(尹魯東)이 돌아와서 낙배 등의 불법 행위를 아뢰고 또 청주에서는 황백(黃白)【어린이에게서 베를 징수하는 것을 황구(黃口)라 하고 죽은 사람에게서 베를 징수하는 것을 백골(白骨)이라 한다.】때문에 찾아와 호소하는 자가 하루에 천여 명이나 되며 영동도 이 수효에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니, 전교하기를, “황백을 군적에 편입시키는 폐단에 대해서 조정의 명령이 매우 엄할 뿐만이 아닌데, 열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천 명을 넘는단 말인가. 옛날 선왕조 때에는 기읍(畿邑)의 군정을 뽑는 일에 불찰이 있었다 하여 어가가 직접 번화한 거리에 나가서 매우 엄하게 조처를 내렸었다. 그런데 이제 듣건대 호서의 고을에 천여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징수하는 폐단이 있다고 하니, 우러러 선왕조의 일을 본받는 도리에 있어 감히 예사롭게 잡아다 다스릴 수 있겠는가. 이낙배와 김이석을 해부로 하여금 잡아다가 거듭 엄히 조사해서 기어코 진상을 밝힌 다음 중한 벌로 다스려서 다른 원들에게도 징계가 되게 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 두 고을의 군적을 도백으로 하여금 별도로 강명(剛明)한 조사관을 정해서 지방 수령과 함께 바로잡아 실지 수효가 과연 그러한지의 여부를 우선 조사해서 아뢰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조사를 해본 결과 이름만 올라 있는 군사가 청주는 1천여 명이었고 영동은 3백 명이었으므로, 의금부가 벌을 의논하여 청하기를, “낙배는 숙천부에 햇수의 기한 없이 귀양보내고 이석은 영암군에 햇수의 기한 없이 충군시키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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