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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76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권력과 정치권력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

Authors
Publication Date
Keywords
  • 정치권력,문화권력,잡문부흥토론
  • 소품문토론
  • 쌍백운동
  • 반우파투쟁
  • 姚文元
  • 胡風
  • 周揚
  • 毛澤東
  • 제4종극본
  • 중앙선전부
  • 문화부
  • 전영국
  • 대중전영

Abstract

이 연구는 다섯 가지의 세부과제를 설정하고 1차년도(1950년대)와 2차년도(1960년대 이후 문혁까지)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하였는 바, 각각의 세부과제의 초록은 다음과 같다. 김하림 : <문예와 정치의 기로― ‘胡風反革命集團事件’에 대한 연구> 1955년에 발생한 ‘胡風반혁명집단사건’은 1949년 신중국 수립 후 문예계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측면을 포함하여 궁극적으로는 권력이 문예에 대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이자 의미 있는 사건이다. 특히 胡風사건은 당내에서 벌어진 사상투쟁, 이념투쟁의 성격이자 문예계 권력을 둘러싼 내부 투쟁의 양상이다. 이런 점에서 胡風사건은 신중국 수립 후 중국공산당의 문예정책, 나아가서 지식인문제에 대한 입장이나 관점을 고찰하는 하나의 계기이자, 정치권력과 문예권력의 상호 길항작용을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김명희 : <이단과 비주류 소설을 둘러싼 논쟁> 이 글은 1949년부터 1959년까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치권력에 의해 이단시되고 비판을 받은 비주류 소설--蕭也牧의「우리 부부사이(我們夫婦之間)」, 路翎의「움푹한 지대에서의 "전투"(洼地上的"戰役")」와 王蒙의「조직부에 새로 온 청년(組織部新來的靑年人)」 --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하여, 각 시기의 비판운동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 시기에 창작된 소설가운데 중점적으로 논쟁이 되거나 비판받은 소설과 그 비판의 논쟁점들을 중심으로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의 상호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희경 : <새로운 정치권력이 요구하는 문학적 지지와 갈등> 신중국 성립 이후, 정치권력은 문학이 정치의 대리인이자 충실한 지지자로서 자리잡도록 선동한다. 몇 차례의 정치운동을 통해 이러한 요구는 분명해지나, 객관적 평가기준의 부재는 문단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문화권력에 대한 억압은 정치에 대한 공포심과 불신임을 조성한다. 1949년부터 1960년까지 창작된 산문작품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정치적 기준에 따라 시대정신을 찬양하는 모습; 두 번째는 정치화된 비평의 틀을 극복하고 진정한 문학비평을 추구하는 모습. 그러나 작가들이 탐색하고 추구했던 새로운 창작은 정치담론에 의해 부정되고 비판되거나, 반혁명의 증거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창작노선을 개척하려던 노력들은 물거품이 됐으며, 산문은 현실비판과 개혁이라는 본래의 힘을 차츰 상실한다. 양회석 : <1950년대 중국 연극 : 정치와 문예의 함수관계> 1950년대 중국연극은 희곡의 ‘현대화’와 화극의 ‘민족화’를 추구한 바, 그것은 새 시대와 중국적 토양에 부응하고자 하는 연극적 실험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극을 정치 선전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정치권은 연극에 수시로 개입하는데, 정치적 창작 계기를 부여함으로써 양적 성장을 부추기는 반면, 문예적 입장을 위축시킴으로써 질적 퇴보(공식화와 개념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려는 연극계 내부의 자각과 ‘쌍백’ 방침으로 인한 유연한 분위기가 맞물리며 ‘제4종극본’이 출현한다. 이들 작품은 연극 본연의 사회 감시 기능과 심미적․오락적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기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평가는 쌍백 → 문혁 → 신시기 별로 호평 → 매도 → 칭송으로 큰 편차를 보이는데, 이는 예술 → 정치 → 예술이라는 평가 잣대와 표리를 이루고 있다. 이주노 : <1950년대 중국 영화의 문화이데올로기와 정치권력> 1950년대 중국의 영화사업은 모두 중국공산당 중앙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영화제작을 담당하는 관련기구는 모두 국영의 형태로 공산당의 일원적 지배 아래 있었으며, 영화의 생산으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문화부와 중앙선전부 등의 영화 관련 부서의 직접적 지도와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영화정책 역시 고위 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정치형세의 부단한 변화에 따라 차츰 심사와 통제가 강화되었다. 영화비평에 있어서도 모택동 등의 최고 지도자의 언급은 비평의 최고 준칙으로서 받아들여졌으며, 영화비평 자체는 좌편향이 심화됨에 따라 정치권력의 정치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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