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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李田靑)의 『井觀編』과 천문학 이해

Authors
Publication Date
Keywords
  • 다산 정약용
  • 다산학
  • 다산학단
  • 실학
  • 남인
  • 강진
  • 정약전
  • 정학연
  • 정학유
  • 초의
  • 혜장
  • 이강회
  • 윤정기
  • 황상
  • 이청
  • 김정희
  • 경세학
  • 천문학
  • 19세기 지성사
  • 經史

Abstract

이청(李田靑, 1792-1861)이란 인물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현재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다. 얼마 전에 임형택 교수가 학계에 소개한 것이 전부이다. 그 소개에 의하면 이청은 실학의 거두 정약용(丁若鏞)의 강진 유배시절의 제자들 중 한 명으로 그로부터 남다른 총애를 받던 제자였다고 한다. 아울러 임형택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의 도서관에 오래도록 완전히 묻혀있던 이청의 저서 『정관편』을 발굴해 소개해 주었다. 이와 같이 얼마 전에 학계에 소개되기 시작한 이청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즉 남인 실학의 거두 정약용의 제자로 스승에게서 미약했던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이청이 지녔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조선후기의 과학자하면 흔히 정약용을 떠올리곤 한다. 『기기도설(奇器圖說)』과 같은 서양의 기계기술서를 활용해 화성을 축조할 때 유용하게 썼던 ‘거중기’나 ‘녹로’ 같은 기구들을 개발 설계했음은 교과서에 실린 사실이기도 하다. 정약용이 참여했던 화성 건설과 거중기의 개발은 조선 후기 실용적 실학의 상징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그러나 정약용의 저서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과학사 연구자들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과학자 또는 과학 활동으로 정약용과 그의 성과를 거론하는데 망설이곤 한다. 일찍이 과학사학자 박성래 교수는 정약용의 과학사상과 과학적 업적을 평가하면서 “그의 과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고, 그 이유로 정약용의 과학사상은 “그의 방대한 작품 구석구석을 헤쳐 가며 찾아 정리해야 될 형편”일 정도로 “홍대용(1731-1783)의 <의산문답(毉山問答)>에 해당할 만한 체계적인 과학사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김영식 교수는 이익(1681-1763)이나 홍대용, 그리고 황윤석(黃胤錫, 1729-1791)과 같은 이전 학인들과 비교해서 정약용은 과학에 대한 관심도 작았고, 전문적 과학지식의 수준도 낮았다고 평가했다. 이와 같이 과학사학자들이 파악하는 정약용의 과학지식은 파편적이었고 피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정약용이 지닌 과학지식은 그의 명성에 비해 빈약했고, 그가 남긴 과학 저서도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약용이 남달리 총애하고, 강진유배시절 그의 저술과 편찬활동을 손발이 되어 지척에서 도왔던 이청이 남긴 『정관편』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이청의 『정관편』은 조선 후기에 편찬된 그 어떤 천문역산 분야의 문헌 못지않은 전문성과 방대한 내용을 담은 천문역산서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관편』은 그간 노론 북학파나 소론 학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했고, 나아가 그 실체적 모습이 잘 파악되지 못했던 남인 다산학파 학인들의 천문역산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문헌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에서는 이와 같이 다산학파 학인들의 천문역산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의 모습을 잘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정관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머리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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